[왕실 유물 이야기] 임금이 선물한 큰 홍어, ‘은사문(恩賜文)’

otimetour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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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신하에게 특별히 선물을 내리면서 ‘은사문(恩賜文)’이라는 문서를 함께 발급하였습니다. 은사문은 비록 간략하지만 왕실에서 친히 내린 어물(魚物), 문방구, 부채 등 다양한 선물을 보여줍니다. 이 문서는 왕실에서 신하에게 어물, 반찬 등의 음식(膳)을 하사한다고 하여 ‘하선장(下膳狀)’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은사문은 국내 여러 박물관 및 도서관에 몇 몇 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형태는 낱장도 있고 여러 점을 모아 첩으로 제작한 것도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도 은사문 몇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중 이번에 소개할 은사문은 2010년 입수한 것입니다.

 

이 은사문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액자 형태로 입수되었습니다. 문서는 가로, 세로 30cm의 정방형 형태로 발급 당시의 모습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접혀 있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퇴임한(原任) 제학(提學) 좌의정(左議政) 채제공(蔡濟恭, 1720-1799)에게 1796년(丙辰) 3월 초 8일에 대홍어 1마리(尾)를 하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사품 내역을 적은 글자 위에 왕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관서였던 내탕(內帑)의 관서인인 ‘내탕지인(內帑之印)’이 날인되어 있어서 내탕에서 물건을 마련하고 발급한 문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은사문은 이와 같이 매우 간략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문서만으로는 선물 하사와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왕실의 누가 채제공에게, 어떠한 일로 홍어를 선물한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은사문과 관련된 다른 기록물에서 당시 상황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은사문을 입수할 당시 은사문과 짝을 이루고 있는 기록 한 점도 함께 입수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은사문과 같이 액자 형태로 입수되었으며, 기록 우측에는 ‘정조대왕어필(正祖大王御筆)’이라는 묵서가, 좌측에는 한학자인 연민(淵民)이가원(李家源, 1917-2000)이 1967년에 작성한 묵서가 있습니다.

 

기록의 글자를 정서로 옮기고 내용을 해석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慶辰饌品, 今日略辨, 而午熱此甚, 難以遙致, 以一?分傳耳.


생일 축하를 위한 찬품(饌品)은 오늘 대략 갖추었으나 낮의 열기가 이처럼 심하여 멀리 보내기엔 어려울 듯하니 1합만을 나누어 전한다.

 

그리고 이 기록 좌측의 이가원의 글에서 보다 상세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이 조금 길지만 이를 옮기고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此弘齋王手書與樊巖蔡相公濟恭, 頒傳慶辰饌品者, 而?以別幅物目, 則俱在丙辰年間事也. 此雖小品, 足見其晟代君臣相得之?矣. 柳君端夏珍?之, 旣?而欲揭諸壁, 要余題此有如是也. 丁未中秋 日 眞城 李家源 敬書.

 

이는 정조 임금이 직접 써서 번암 채제공(蔡濟恭)에게 준 글로, 생일 축하를 위한 찬품을 나누어 전한 것은 별폭의 물목으로 참고할 수 있는데 모두 병진연간(1796년)의 일이다. 이는 비록 작은 물품이나 족히 태평성대의 임금과 신하가 서로 뜻이 맞는 기쁨이 드러나는 것이다. 유단하(柳端夏)가 이를 진귀하게 여겨서 이미 꾸며서 벽에 걸고자 나에게 제문(題文) 쓰기를 요청함이 이와 같음이 있었다. 1967년(정미) 중추 일 진성 이가원이 공경하여 쓰다.

 

즉 은사문과 이 기록을 함께 볼 때 은사문은 정조가 1796년에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대홍어 한 마리를 내리면서 발급한 것이며, 소장자가 은사문과 이 기록을 벽에 걸어두고자 액자 형태로 제작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은사문의 발급 시기가 3월 8일인데, 채제공의 생일은 4월 6일이므로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관련 기록이 없어 축하 대상을 알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은사문과 이 기록의 형태가 원래와 다르게 변형되었기 때문에 본래 어떠한 형태로 전래되었고, 문서와 기록이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임금, 왕비, 왕자 등에게서 받은 은사문 등의 기록을 첩으로 제작하여 현재까지 전하는 「은사첩(恩賜帖)」의 사례를 볼 때, 임금이 내리신 선물과 문서, 그리고 어필을 가문에서 소중하게 여겨 첩으로 제작하여 보관하다가 후대 소장자가 별도의 액자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측해봅니다만 이 또한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임금이 채제공에게 대홍어 한 마리를 하사한 것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임금은 채제공의 취향을 알고 홍어를 내린 것일까요? 과연 임금이 친히 내린 홍어는 어떤 맛이었을까요?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 참고

김봉좌 (2006). 해남 녹우당 소장 「恩賜帖」 고찰. 서지학연구, 33, 217-249.


이상백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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