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희정당 벽화
연대 - 1920년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 - 각 폭 가로: 882.5cm, 세로: 195.5cm
지정현황 - 국가등록문화유산
창덕궁의 희정당 내부 벽면을 장식하였던 그림이다.
희정당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으며, 본래 왕이 평상시 거처하면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순종황제가 여러 관리나 손님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외형은 전통식으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절충하여 재건하는 과정에서 1920년 희정당의 동・서벽에는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그린 금강산 그림 두 점을 벽화로 장식하였다. 조선왕실 장식화의 전통에 따라 제작이 용이하도록 비단에 그림을 그려 붙이는 부벽화(付壁畵) 형식을 택하였다.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창덕28311)는 화면 중앙에 좌우 파노라마 형식으로 바위산을, 그 뒤쪽으로 토산을 두고, 왼편에 있는 토산 정상에 소나무에 둘러싼 총석정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상단의 후경에는 옅은 채색으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산세를, 화면 하단에는 바위산 아래쪽으로 물결무늬를 촘촘하게 넣은 바다의 모습을 그렸다.
서쪽 벽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창덕28312)는 금강산의 가을전경을 그린 그림으로, 붉은 색 단풍으로 물들고 구름으로 둘러 쌓인 금강산의 가을 전경을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였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연대 - 1920년
재질 - 비단에 채색
크기 - 각 폭 가로: 882.5cm, 세로: 195.5cm
지정현황 - 국가등록문화유산
창덕궁의 희정당 내부 벽면을 장식하였던 그림이다.
희정당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영역에 있으며, 본래 왕이 평상시 거처하면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던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순종황제가 여러 관리나 손님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창덕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각을 외형은 전통식으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절충하여 재건하는 과정에서 1920년 희정당의 동・서벽에는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그린 금강산 그림 두 점을 벽화로 장식하였다. 조선왕실 장식화의 전통에 따라 제작이 용이하도록 비단에 그림을 그려 붙이는 부벽화(付壁畵) 형식을 택하였다.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창덕28311)는 화면 중앙에 좌우 파노라마 형식으로 바위산을, 그 뒤쪽으로 토산을 두고, 왼편에 있는 토산 정상에 소나무에 둘러싼 총석정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상단의 후경에는 옅은 채색으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산세를, 화면 하단에는 바위산 아래쪽으로 물결무늬를 촘촘하게 넣은 바다의 모습을 그렸다.
서쪽 벽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창덕28312)는 금강산의 가을전경을 그린 그림으로, 붉은 색 단풍으로 물들고 구름으로 둘러 쌓인 금강산의 가을 전경을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였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