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문화유산] 영친왕비 대례복 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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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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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 대례복 일습(英親王妃 大禮服 一襲)


연대 - 1922년경 

재질 - 사직, 견, 옥, 기타 

크기 - 적의 뒷길이: 143.8cm, 화장: 104.6cm 

지정현황 - 국가민속문화유산 


왕비와 왕세자빈의 궁중 대례복인 적의 일습이다.
이 복식은 1921년 일본에서 영친왕이 이진(李晉)을 낳고 1922년 귀국을 했을 때, 순종과 순정효황후를 처음으로 알현하는 근현례(覲見禮) 날 종묘 참배 시에 입었던 의례복으로 추정된다.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 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다.


대비와 왕비, 세자빈 등 왕실의 적통을 잇는 여성들은 가례나 책봉 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서 최고의 예복인 적의(翟衣)를 입었다. 적의 차림을 할 때 밑받침 옷인 중단(中單)을 갖추어 입고, 그 위에 가장 겉에 입는 옷인 적의를 착용한다. 적의는 심청색 바탕에 일정한 간격으로 꿩무늬를 직조한 직물로 제작하였고, 가슴, 등, 양 어깨에는 조선시대 왕족이 착용하던 금실로 수놓은 용무늬 보(補)를 덧붙였다. 적의 위에는 대대(大帶)와 후수(後綬), 폐슬(蔽膝), 하피(霞帔), 옥대(玉帶)와 패옥(佩玉)등으로 장식하고 청말(靑襪)과 청석(靑舃)을 신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왕비는 대홍색, 왕세자빈은 짙은 청색의 비단으로 만들었으나, 1897년(광무 원년)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황후와 황태자비는 심청색 적의를 착용하였다.

적의 착용 모습

영친왕비 복식영친왕비 장신구

머리에는 각종 비녀와 댕기로 장식한 대수머리(大首)를 착용하였다.
대수는 왕비의 대례복 치장에 활용했던 가체(加髰)로서 높이는 20cm가 넘었다. 양 끝에 봉황이 조각된 비녀를 꽂으며, 머리 위 앞부분에는 용잠, 떨잠, 진주동곳 등을 화려하게 꽂아 장식하였다. 진주 장잠은 백옥판에 도금한 금속을 연결한 큰 비녀이다. 백옥판 전면에 당초문양을 투각하였고, 중앙에는 수(壽)자를 투각한 비녀로, 대수머리 정면 상부에 수직으로 꽂았다. 봉황장식 옥비녀는 현존하는 비녀 중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인 비녀이다. 백옥으로 봉황의 형태를 조각하고, 금속장식을 붙여 꾸몄다. 


이 옥비녀는 궁중에서 비와 빈이 적의를 입을 때 대수머리의 앞쪽 좌우에 봉황이 앞을 향하도록 꽂았다. 백옥떨잠은 왕비를 비롯한 상류계급의 여성들이 대수머리나 어여머리를 할 때 머리 앞 중앙과 좌우 양쪽에 꽂는 머리 장식품이다. 둥근 옥판에 진주, 산호, 청 · 홍파리 등으로 장식하고 끝에는 떨새를 달았다.

영친왕비 대삼작노리개

옷 위에는 화려한 대삼작노리개를 착용하였다. 각각 붉은색 산호, 옥나비 한 쌍,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불수감(佛手柑)을 주제로 해서 만들었다.

영친왕비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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