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지도로 살펴보는 조선팔도의 과거와 현재
1673년 김수홍(金壽弘, 1601~1681)이 조선에 대해서 자연지리와 함께 인문지리를 그리고(畵), 써서(書) 제작한 목판본 지도이다. 통상 지도가 자연지리를 주 대상으로 그려놓은 점에 비해서 이 지도는 자연보다는 인문을 강조한 지도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總攬圖)’라고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해석하자면 ‘조선팔도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한꺼번에 본다.’가 되는데 팔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알려준다는 취지가 엿보인다. 내용상으로 이 지도는 조선전기 유형의 〈조선팔도지도〉에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지리지, 그리고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이라는 인물 사전의 내용을 망라하여 한 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문지리’ 지도이면서 각 지역별 ‘인물분포’를 다룬 지도인 것이다. 무엇보다 작자인 김수홍이 중점을 둔 점은 유사 이래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인 조선중기까지 각 고을의 유명 인사들을 자세히 기록하는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상단과 좌단 가장자리로는 이 지도에 대한 설명이 둘러져 있다. 상단에는 조선팔도의 노정기(路程記)가 써져 있고, 좌단에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길게 내려써간 김수홍의 지문(識文)이 있다. 상단 우측에는 ‘조선팔도 330관 대총노정기(朝鮮八道 三百三十官 大摠路程記)’라는 제목 하에 조선팔도의 거리는 남북 2,370리, 동서 1,070리가 된다고 했다. 이어서 도별로 군현 수를 언급하고 감영을 중심으로 서울과의 소요 일정 및 거리 등을 표기하였다. 도별 군현 수는 경기도 38관(官), 충청도 54관, 황해도 24관, 강원도 28관, 전라도 57관, 경상도 67관, 평안도 42관, 함경도 22관, 제주 1관으로 총 333관에 이른다. 소요 일정 및 거리 등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팔도 중 하나의 도(道)를 대상으로 해당 내용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전라도 : 57관(官) 5역(驛) 18보(堡, 제방), 감영 전주(監營 全州)로부터 북으로 경성(京城)까지 6일을 가야하고 517리이다, 남쪽으로는 감영에서 흥양(興陽, 현재 고흥)까지 5일 반(半)을 가야하고 509리이니, 합해서(서울로부터)는 11일 반, 1,024리가 된다.”
좌단의 지문(識文)에서는 조선(朝鮮)의 유래, 그리고 지도의 작성방법 등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조선이란 국호는 단군(檀君) 때로부터 유래하였고, 이후 마한(馬韓) 등 삼한이 복속하여 경주(慶州, 곧 신라)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고구려 주몽(朱夢), 백제 온조(溫祚), 고려 왕건(王建), 이후 태조(太祖)가 조선을 개창함을 말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지도를 만들게 됨에 있어서 읍호와 산천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당대의 지도에 의거하였고, 이 지도의 주요내용인 인물에 대해서는 ‘기묘록(己卯錄)’,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등을 참조하였음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계축(癸丑) 맹하(孟夏) 하한(下澣)에 안동(安東) 김수홍(金壽弘)이 삼가 기록한다 했다.
지도를 보면, 가운데에 한성부가 넓게 차지하고 있다. 일단 성곽이 축척에 비해 매우 크게 그려져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하천이 둥그렇게 타원형으로 둘러져있다. 아래쪽은 한강인데 동쪽에서 흘러내려와 남쪽으로 휘돌아 내려간 다음에 서쪽으로 올라가도록 그려놓았다. 남으로는 ‘한강(漢江)’ ‘동작(銅雀)’ ‘노량(鷺梁)’ ‘용산(龍山)’을 지나 ‘율도(栗島)’ 곧 지금의 여의도를 에워싼 뒤에 ‘서강(西江)’을 지나고, 북으로는 임진강이 동에서 서로 ‘임진(臨津)’을 지나 한강과 만나게 했다. 한양 성곽 바깥으로 하천이 해자처럼 둥글게 감싼 형태로 한양의 지리적 안정성을 추구한 모양새이다.
한양은 경도(京都)라 했으며 매우 과장되게 처리하고 있어서 수도로서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양은 ‘경도(京都)’라고 표기하고 주변에 성곽을 드리웠다. 그 안에는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덕궁(慶德宮)’이 표기되어 있고, 동서 양쪽으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있다. 경복궁 아래쪽은 동편으로는 안쪽으로부터 ‘정부(政府)’ 곧 의정부, ‘이조(吏曹)’ ‘한성(漢城)’ 즉 한성부, ‘호조(戶曹)’가 자리하고, 서편으로는 ‘예조(禮曹)’ ‘중추부(中樞府)’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사헌부(司憲府)’가 자리했다. 이어 창덕궁 서편 위로는 ‘태학(太學)’ 곧 성균관이 있고, 육조의 서편에는 ‘남별궁(南別宮)’이 있다. 흥인문 안쪽으로는 ‘훈련원(訓鍊院)’, 숭례문 안쪽으로는 ‘태평관(太平館)’을 소개하고 있다. 도성의 사방으로 ‘북악(北岳)’ ‘목멱산(木覓山)’ ‘타락산(駞駱山)’ ‘인왕산(仁王山)’이 표기되어 있고, ‘숭례문(崇禮門)’ ‘흥인문(興仁門)’이 있다. 또한 동쪽과 남쪽 성벽에 붙어서 ‘동관왕묘(東關王廟)’, ‘남관왕묘(南關王廟)’가 들어가 있다.
[한양 부분]
팔도의 감영에 대해서는 검정색 네모 칸 안에 두드러지게 표기했다. 도성의 서편 성벽 바깥에 ‘경기감영(京畿監營)’이 있고, 이어 지역별로 ‘강원감영 원주(江原監營 原州)’ ‘충청감영 공주(忠淸監營 公州)’ ‘전라감영 전주(全羅監營 全州)’ ‘경상감영 대구(慶尙監營 大丘)’가 위치하였고, 서울 위쪽으로는 각각 ‘황해감영 해주(黃海監營 海州)’ ‘평안감영 평양(平安監營 平壤)’ ‘함경감영 함흥(咸鏡監營 咸興)’이 해당 지역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영을 중심으로 도별로 각 군현들을 표기하고 서울과의 거리, 주요 사적지, 그리고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했다.
팔도의 각 지역들에서는 역시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각 지방마다 기본적으로 한양과의 거리가 표기되고 산천이나 누정(樓亭)들이 들어가 있지만 역시 지면의 대부분은 인명이 차지하고 있다. 먼저 경기도를 보면, 파평에 고려 윤관(尹瓘), 백인걸(白仁傑), 성혼(成渾), 이이(李珥), 정승(相) 윤두수(尹斗壽), 인조의 장릉(長陵) 등이 있다. 양주에는 태조 건원릉(建元陵), 태조 행궁(行宮), 선조 목릉(穆陵), 정승 성희안 묘(成希顏 墓), 정승 신용개 묘(申用漑 墓)가 있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명신들이 많고 그와 함께 왕릉과 신하들의 묘소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금강산 부분] [전라도 부분]
충청도에는 계룡산 아래쪽으로 연산에 김집(金集), 김장생(金長生), 이산에 윤선거(尹宣擧), 윤원거(尹元擧), 은진에 송인수(宋麟壽), 그리고 익산의 소세양(蘇世讓) 등으로 조선중기 정치와 학문을 선도하던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강원도에는 산천이 수려한 고장답게 명승지 표기가 눈에 띈다. 금강산 비로봉(毗盧峯)에다가 표훈사(表訓寺), 유점사(楡点寺), 장안사(長安寺)가 소개되고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 낙산사(洛山寺), 강릉 경포대(鏡浦臺), 삼척 죽서루(竹西樓), 울진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으로 이어진다.
전라도로 내려가면 광주에서는 생원과 진사에 동시 장원을 한(生進俱魁) 기대승(奇大升)을 비롯하여 고경명(高敬命), 무관 김덕령(金德齡), 나주에서는 김천일(金千鎰), 그리고 창평의 정홍명(鄭弘溟)이 있으니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곳이 학문뿐만 아니라 충절의 고장임을 알게 해준다. 경상도로 가면 일단 경주의 비중을 크게 해서 신라 때의 혁거세(赫居世)를 시작으로 소개해나갔는데 공자 사당인 문묘(文廟)에 들어간(入文廟) 인물들로 신라의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 조선의 이언적(李彦迪)을 소개했다. 또한 현풍의 김굉필(金宏弼), 함양의 정여창(鄭汝昌), 예안의 이황(李滉) 등도 문묘에 들어갔음을 표기했다. 신라 이래로 학문의 전통이 지속적으로 계승되면서, 다수의 인물이 문묘에 들어갔음을 알려준다.
남쪽의 바다를 건너면 지도 끝자락에 제주도가 있다. 먼저 탐라(耽羅)라는 옛 지명을 소개하고, 아래쪽으로 정의(㫌義)와 대정(大靜) 두 현을 표기했다. 그리고 이 지역의 토성인 양고부(梁高夫) 세 성씨를 소개하고, 동쪽 끝에는 조천관(朝天館)을, 서쪽 끝에 명일포(明日浦)를 표기하였다. 한라산은 ‘얼음과 눈이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氷雪夏不消)’고 했다.
(작성자 : 김문택 학예연구사)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주요 유물 소개'>
한 장의 지도로 살펴보는 조선팔도의 과거와 현재
1673년 김수홍(金壽弘, 1601~1681)이 조선에 대해서 자연지리와 함께 인문지리를 그리고(畵), 써서(書) 제작한 목판본 지도이다. 통상 지도가 자연지리를 주 대상으로 그려놓은 점에 비해서 이 지도는 자연보다는 인문을 강조한 지도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總攬圖)’라고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해석하자면 ‘조선팔도에 대해서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한꺼번에 본다.’가 되는데 팔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알려준다는 취지가 엿보인다. 내용상으로 이 지도는 조선전기 유형의 〈조선팔도지도〉에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지리지, 그리고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이라는 인물 사전의 내용을 망라하여 한 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문지리’ 지도이면서 각 지역별 ‘인물분포’를 다룬 지도인 것이다. 무엇보다 작자인 김수홍이 중점을 둔 점은 유사 이래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인 조선중기까지 각 고을의 유명 인사들을 자세히 기록하는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상단과 좌단 가장자리로는 이 지도에 대한 설명이 둘러져 있다. 상단에는 조선팔도의 노정기(路程記)가 써져 있고, 좌단에는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길게 내려써간 김수홍의 지문(識文)이 있다. 상단 우측에는 ‘조선팔도 330관 대총노정기(朝鮮八道 三百三十官 大摠路程記)’라는 제목 하에 조선팔도의 거리는 남북 2,370리, 동서 1,070리가 된다고 했다. 이어서 도별로 군현 수를 언급하고 감영을 중심으로 서울과의 소요 일정 및 거리 등을 표기하였다. 도별 군현 수는 경기도 38관(官), 충청도 54관, 황해도 24관, 강원도 28관, 전라도 57관, 경상도 67관, 평안도 42관, 함경도 22관, 제주 1관으로 총 333관에 이른다. 소요 일정 및 거리 등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팔도 중 하나의 도(道)를 대상으로 해당 내용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전라도 : 57관(官) 5역(驛) 18보(堡, 제방), 감영 전주(監營 全州)로부터 북으로 경성(京城)까지 6일을 가야하고 517리이다, 남쪽으로는 감영에서 흥양(興陽, 현재 고흥)까지 5일 반(半)을 가야하고 509리이니, 합해서(서울로부터)는 11일 반, 1,024리가 된다.”
좌단의 지문(識文)에서는 조선(朝鮮)의 유래, 그리고 지도의 작성방법 등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조선이란 국호는 단군(檀君) 때로부터 유래하였고, 이후 마한(馬韓) 등 삼한이 복속하여 경주(慶州, 곧 신라)가 되었다고 했다. 이후 고구려 주몽(朱夢), 백제 온조(溫祚), 고려 왕건(王建), 이후 태조(太祖)가 조선을 개창함을 말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지도를 만들게 됨에 있어서 읍호와 산천의 형태 등에 대해서는 당대의 지도에 의거하였고, 이 지도의 주요내용인 인물에 대해서는 ‘기묘록(己卯錄)’,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등을 참조하였음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계축(癸丑) 맹하(孟夏) 하한(下澣)에 안동(安東) 김수홍(金壽弘)이 삼가 기록한다 했다.
지도를 보면, 가운데에 한성부가 넓게 차지하고 있다. 일단 성곽이 축척에 비해 매우 크게 그려져 있고, 그 바깥쪽으로는 하천이 둥그렇게 타원형으로 둘러져있다. 아래쪽은 한강인데 동쪽에서 흘러내려와 남쪽으로 휘돌아 내려간 다음에 서쪽으로 올라가도록 그려놓았다. 남으로는 ‘한강(漢江)’ ‘동작(銅雀)’ ‘노량(鷺梁)’ ‘용산(龍山)’을 지나 ‘율도(栗島)’ 곧 지금의 여의도를 에워싼 뒤에 ‘서강(西江)’을 지나고, 북으로는 임진강이 동에서 서로 ‘임진(臨津)’을 지나 한강과 만나게 했다. 한양 성곽 바깥으로 하천이 해자처럼 둥글게 감싼 형태로 한양의 지리적 안정성을 추구한 모양새이다.
한양은 경도(京都)라 했으며 매우 과장되게 처리하고 있어서 수도로서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양은 ‘경도(京都)’라고 표기하고 주변에 성곽을 드리웠다. 그 안에는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덕궁(慶德宮)’이 표기되어 있고, 동서 양쪽으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있다. 경복궁 아래쪽은 동편으로는 안쪽으로부터 ‘정부(政府)’ 곧 의정부, ‘이조(吏曹)’ ‘한성(漢城)’ 즉 한성부, ‘호조(戶曹)’가 자리하고, 서편으로는 ‘예조(禮曹)’ ‘중추부(中樞府)’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사헌부(司憲府)’가 자리했다. 이어 창덕궁 서편 위로는 ‘태학(太學)’ 곧 성균관이 있고, 육조의 서편에는 ‘남별궁(南別宮)’이 있다. 흥인문 안쪽으로는 ‘훈련원(訓鍊院)’, 숭례문 안쪽으로는 ‘태평관(太平館)’을 소개하고 있다. 도성의 사방으로 ‘북악(北岳)’ ‘목멱산(木覓山)’ ‘타락산(駞駱山)’ ‘인왕산(仁王山)’이 표기되어 있고, ‘숭례문(崇禮門)’ ‘흥인문(興仁門)’이 있다. 또한 동쪽과 남쪽 성벽에 붙어서 ‘동관왕묘(東關王廟)’, ‘남관왕묘(南關王廟)’가 들어가 있다.
[한양 부분]
팔도의 감영에 대해서는 검정색 네모 칸 안에 두드러지게 표기했다. 도성의 서편 성벽 바깥에 ‘경기감영(京畿監營)’이 있고, 이어 지역별로 ‘강원감영 원주(江原監營 原州)’ ‘충청감영 공주(忠淸監營 公州)’ ‘전라감영 전주(全羅監營 全州)’ ‘경상감영 대구(慶尙監營 大丘)’가 위치하였고, 서울 위쪽으로는 각각 ‘황해감영 해주(黃海監營 海州)’ ‘평안감영 평양(平安監營 平壤)’ ‘함경감영 함흥(咸鏡監營 咸興)’이 해당 지역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영을 중심으로 도별로 각 군현들을 표기하고 서울과의 거리, 주요 사적지, 그리고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을 소개했다.
팔도의 각 지역들에서는 역시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각 지방마다 기본적으로 한양과의 거리가 표기되고 산천이나 누정(樓亭)들이 들어가 있지만 역시 지면의 대부분은 인명이 차지하고 있다. 먼저 경기도를 보면, 파평에 고려 윤관(尹瓘), 백인걸(白仁傑), 성혼(成渾), 이이(李珥), 정승(相) 윤두수(尹斗壽), 인조의 장릉(長陵) 등이 있다. 양주에는 태조 건원릉(建元陵), 태조 행궁(行宮), 선조 목릉(穆陵), 정승 성희안 묘(成希顏 墓), 정승 신용개 묘(申用漑 墓)가 있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명신들이 많고 그와 함께 왕릉과 신하들의 묘소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금강산 부분] [전라도 부분]
충청도에는 계룡산 아래쪽으로 연산에 김집(金集), 김장생(金長生), 이산에 윤선거(尹宣擧), 윤원거(尹元擧), 은진에 송인수(宋麟壽), 그리고 익산의 소세양(蘇世讓) 등으로 조선중기 정치와 학문을 선도하던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강원도에는 산천이 수려한 고장답게 명승지 표기가 눈에 띈다. 금강산 비로봉(毗盧峯)에다가 표훈사(表訓寺), 유점사(楡点寺), 장안사(長安寺)가 소개되고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 낙산사(洛山寺), 강릉 경포대(鏡浦臺), 삼척 죽서루(竹西樓), 울진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으로 이어진다.
전라도로 내려가면 광주에서는 생원과 진사에 동시 장원을 한(生進俱魁) 기대승(奇大升)을 비롯하여 고경명(高敬命), 무관 김덕령(金德齡), 나주에서는 김천일(金千鎰), 그리고 창평의 정홍명(鄭弘溟)이 있으니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곳이 학문뿐만 아니라 충절의 고장임을 알게 해준다. 경상도로 가면 일단 경주의 비중을 크게 해서 신라 때의 혁거세(赫居世)를 시작으로 소개해나갔는데 공자 사당인 문묘(文廟)에 들어간(入文廟) 인물들로 신라의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 조선의 이언적(李彦迪)을 소개했다. 또한 현풍의 김굉필(金宏弼), 함양의 정여창(鄭汝昌), 예안의 이황(李滉) 등도 문묘에 들어갔음을 표기했다. 신라 이래로 학문의 전통이 지속적으로 계승되면서, 다수의 인물이 문묘에 들어갔음을 알려준다.
남쪽의 바다를 건너면 지도 끝자락에 제주도가 있다. 먼저 탐라(耽羅)라는 옛 지명을 소개하고, 아래쪽으로 정의(㫌義)와 대정(大靜) 두 현을 표기했다. 그리고 이 지역의 토성인 양고부(梁高夫) 세 성씨를 소개하고, 동쪽 끝에는 조천관(朝天館)을, 서쪽 끝에 명일포(明日浦)를 표기하였다. 한라산은 ‘얼음과 눈이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氷雪夏不消)’고 했다.
(작성자 : 김문택 학예연구사)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주요 유물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