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점에서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책의 재료가 된 종이는 값이 엄청나게 비쌌고, 국가에서 출판을 엄격하게 관리하였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책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간행한 책을 임금이 왕족, 공신 등 주요인물에게 직접 내려주었는데, 이를 내사(內賜) 또는 반사(頒賜)라고 합니다. 책이 귀했던 당시 임금께 책을 받는 것은 가문의 영예로, 이런 책은집안 대대로 보물로 삼아 간직하였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열성어제(列聖御製)』라는 책이 있습니다. 『열성어제』는 조선왕조 태조(太祖)에서 철종(哲宗)까지 역대 임금[열성]이 직접 지은 시와 문장[어제]을 모아서 편찬한 왕의 문집입니다. 총 59책으로 여러 번 다른 형태로 출판되었는데, 국내 여러 박물관 및 도서관에 몇 몇 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우리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책은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한 『열성어제』로 태조에서 경종까지의 어제 10책 중 5, 8, 9책을 제외한 일곱 책입니다.
이 『열성어제』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책을 하사받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왕족인 화릉군(花綾君) 이조(李?, 1660~1733)는 경종 1년(1721) 임금으로부터 『열성어제』 제1책에서 제9책까지 아홉 책을 하사받았습니다. 화릉군은 왕족이라서 이미 국가에서 출판한 많은 책을 선물 받았겠죠. 하지만 다른 책도 아닌 임금의 글인 『열성어제』는 더욱 각별했을 겁니다.
| 강희 60년(1721) 3월 21일에 화릉군(花綾君) 조(?)에게 열성어제 1건을 내사(內賜)하니, 은혜를 감사하는 절차는 그만두도록 하라.
동부승지 신 이(李)[이 글을 쓴 신하의 성, 서명]
康熙六十年三月二十一日 內賜花綾君 ? 列聖御製 一件 命除謝恩
同副承旨 臣 李[서명]
|
임금이 하사한 책에는 일반 책과는 다른 독특한 표식이 있습니다. 제1책 표지 뒷면에 언제 어떤 책을 누구에게 내린다고 기록하는데, 이를 ‘내사기(內賜記)’라 합니다. 본문 첫째 면에는 임금의 하사품임을 상징하는 도장인 ‘선사지기(宣賜之記)’를 찍었습니다. 화릉군이 받은 『열성어제』 제1책에도 ‘경종 1년(1721)에 화릉군에게 『열성어제』 1건을 내사한다’는 기록과 ‘선사지기’가 찍혀 있습니다. 이 때 내려진 책은 모두 아홉 책입니다.
이로부터 5년 후, 화릉군은 『열성어제』의 열 번째 책을 추가로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받은 책에는 또 선물 기록이 발견됩니다. 화릉군에게 『열성어제』 제10책을 영조 2년(1726)에 추가로 내린다는 기록입니다. 어떻게 화릉군은 임금으로부터 『열성어제』를 추가로 선물 받게 되었을까요?
| 옹정 4년(1726) 5월 25일에 신축년[첫 번째 열성어제를 내린 1721년]에 반사(頒賜)한 열성어제 건에 1책을 이어 간행하고 보충하여 내린다.
우승지 신 신(愼)[이 글을 쓴 신하의 성, 서명]
雍正四年五月二十五日 辛丑頒賜列聖御製件 續刊一冊添補以賜
右承旨 臣 愼[서명]
|
그 까닭은 『열성어제』라는 책의 출판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열성어제』는 역대 왕의 시문을 차례로 모아서 편찬하기 때문에, 첫 번째 책이 출판된 1631년부터 1865년까지 여러 번으로 나눠서 간행되었습니다. 선왕께서 돌아가시면, 그 다음 왕대에 선왕의 시문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한 것이지요.
화릉군은 경종 1년(1721)에 당시 간행된 『태조어제』부터 『숙종어제』까지 아홉 책을 경종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5년이 안되어 돌아가십니다. 『경종어제』는 경종이 돌아가신 뒤 영조 2년(1726)에 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화릉군은 처음 선물을 받은 지 5년 뒤, 두 번째 선물인 『경종어제』를 다음 임금인 영조로부터 받은 것이죠. 화릉군은 자신이 모셨던 임금의 글을 돌아가신 후에 책으로 받게 되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귀중한 책을 마음 깊이 새기고 간직했습니다.
한편, 『영조어제』는 정조 1년(1776)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1733년에 세상을 떠난 화릉군은 이 책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화릉군이 받은 『열성어제』는 태조로부터 경종까지의 열 책이 전부인 것입니다.
『열성어제』는 출판될 때마다 계속해서 하사되었을 것이지만, 이렇게 추가로 하사된 기록이 남은 예는 현재 찾아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시기의 차이를 두고 간행된 책을 빠트리지 않고 연이어 내리고, 또 이를 보물로 여겨 깊이 간직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깊이 품어 보관한 화릉군과 그 후손의 정성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상백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지금은 서점에서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책의 재료가 된 종이는 값이 엄청나게 비쌌고, 국가에서 출판을 엄격하게 관리하였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책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간행한 책을 임금이 왕족, 공신 등 주요인물에게 직접 내려주었는데, 이를 내사(內賜) 또는 반사(頒賜)라고 합니다. 책이 귀했던 당시 임금께 책을 받는 것은 가문의 영예로, 이런 책은집안 대대로 보물로 삼아 간직하였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열성어제(列聖御製)』라는 책이 있습니다. 『열성어제』는 조선왕조 태조(太祖)에서 철종(哲宗)까지 역대 임금[열성]이 직접 지은 시와 문장[어제]을 모아서 편찬한 왕의 문집입니다. 총 59책으로 여러 번 다른 형태로 출판되었는데, 국내 여러 박물관 및 도서관에 몇 몇 책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 우리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책은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한 『열성어제』로 태조에서 경종까지의 어제 10책 중 5, 8, 9책을 제외한 일곱 책입니다.
이 『열성어제』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책을 하사받은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이죠. 왕족인 화릉군(花綾君) 이조(李?, 1660~1733)는 경종 1년(1721) 임금으로부터 『열성어제』 제1책에서 제9책까지 아홉 책을 하사받았습니다. 화릉군은 왕족이라서 이미 국가에서 출판한 많은 책을 선물 받았겠죠. 하지만 다른 책도 아닌 임금의 글인 『열성어제』는 더욱 각별했을 겁니다.
강희 60년(1721) 3월 21일에 화릉군(花綾君) 조(?)에게
열성어제 1건을 내사(內賜)하니,
은혜를 감사하는 절차는 그만두도록 하라.
동부승지 신 이(李)[이 글을 쓴 신하의 성, 서명]
康熙六十年三月二十一日 內賜花綾君 ? 列聖御製 一件 命除謝恩
同副承旨 臣 李[서명]
임금이 하사한 책에는 일반 책과는 다른 독특한 표식이 있습니다. 제1책 표지 뒷면에 언제 어떤 책을 누구에게 내린다고 기록하는데, 이를 ‘내사기(內賜記)’라 합니다. 본문 첫째 면에는 임금의 하사품임을 상징하는 도장인 ‘선사지기(宣賜之記)’를 찍었습니다. 화릉군이 받은 『열성어제』 제1책에도 ‘경종 1년(1721)에 화릉군에게 『열성어제』 1건을 내사한다’는 기록과 ‘선사지기’가 찍혀 있습니다. 이 때 내려진 책은 모두 아홉 책입니다.
이로부터 5년 후, 화릉군은 『열성어제』의 열 번째 책을 추가로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받은 책에는 또 선물 기록이 발견됩니다. 화릉군에게 『열성어제』 제10책을 영조 2년(1726)에 추가로 내린다는 기록입니다. 어떻게 화릉군은 임금으로부터 『열성어제』를 추가로 선물 받게 되었을까요?
옹정 4년(1726) 5월 25일에 신축년[첫 번째 열성어제를 내린 1721년]에
반사(頒賜)한 열성어제 건에 1책을 이어 간행하고 보충하여 내린다.
우승지 신 신(愼)[이 글을 쓴 신하의 성, 서명]
雍正四年五月二十五日 辛丑頒賜列聖御製件 續刊一冊添補以賜
右承旨 臣 愼[서명]
그 까닭은 『열성어제』라는 책의 출판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열성어제』는 역대 왕의 시문을 차례로 모아서 편찬하기 때문에, 첫 번째 책이 출판된 1631년부터 1865년까지 여러 번으로 나눠서 간행되었습니다. 선왕께서 돌아가시면, 그 다음 왕대에 선왕의 시문을 모아서 책으로 출판한 것이지요.
화릉군은 경종 1년(1721)에 당시 간행된 『태조어제』부터 『숙종어제』까지 아홉 책을 경종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경종은 왕위에 오른 지 불과 5년이 안되어 돌아가십니다. 『경종어제』는 경종이 돌아가신 뒤 영조 2년(1726)에 간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화릉군은 처음 선물을 받은 지 5년 뒤, 두 번째 선물인 『경종어제』를 다음 임금인 영조로부터 받은 것이죠. 화릉군은 자신이 모셨던 임금의 글을 돌아가신 후에 책으로 받게 되니,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귀중한 책을 마음 깊이 새기고 간직했습니다.
한편, 『영조어제』는 정조 1년(1776)에 간행되었기 때문에 1733년에 세상을 떠난 화릉군은 이 책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화릉군이 받은 『열성어제』는 태조로부터 경종까지의 열 책이 전부인 것입니다.
『열성어제』는 출판될 때마다 계속해서 하사되었을 것이지만, 이렇게 추가로 하사된 기록이 남은 예는 현재 찾아보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시기의 차이를 두고 간행된 책을 빠트리지 않고 연이어 내리고, 또 이를 보물로 여겨 깊이 간직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책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깊이 품어 보관한 화릉군과 그 후손의 정성에 감사하게 됩니다.
이상백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