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고궁박물관에는 왕의 초상화가 여러 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 절반가량이 불에 탄 채로 전해져온 왕의 초상화 한 점을 소개하겠습니다. 남아 있는 모양을 보면 오른쪽 면이 지그재그 형태를 그리고 있고 볼록한 지점 안쪽으로는 길쭉한 타원형의 구멍들을 만들며 불에 탄 모습입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까지 규칙적인 모양을 만들면서 불에 탔다는 것은 이 그림이 말려진 상태로 보관되던 중에 불에 탔음을 의미합니다.
왕의 초상화는 어진(御眞)이라고 부르며 본래는 궁궐의 선원전이라고 하는 공간에 소중히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어진 역시 창덕궁에 모셔져 있던 것이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옮겨져 보관되었습니다.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보관 창고에 불이 나면서 궁궐로 돌아와야 할 상당수의 문화재들이 화마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어진도 그 때 불에 탄 것입니다.
어진은 보통 그림의 오른쪽 위에 ‘표제(標題)’라는 것을 적어서 어느 왕을 그린 것인지 기록을 하게 됩니다. 화마 속에서 다 타버리지 않고 절반 정도라도 남은 것은 다행이지만, 오른쪽 절반이 불에 타면서 표제는 남아있지 않고 이 어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옷입니다. 어진 속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은 황색 곤룡포입니다. 곤룡포는 왕이 평상 시 정무를 볼 때 입는 옷으로 조선시대의 왕들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황제국임을 선포하면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의 곤룡포를 입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는 고종과 순종 두 사람뿐이었으므로 이 어진의 주인공은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좁혀집니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에는 당시 사진 기술이 도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어진 속 얼굴을 두 사람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주인공은 바로 마지막 황제인 순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진 제작과 관련된 기록들을 연구한 결과, 이 어진은 1928년에 그려진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순종은 1926년에 승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어진은 순종이 돌아가신 뒤에 그려졌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어진을 그리는 방법에는 도사(圖寫), 모사(摸寫), 추사(追寫)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도사는 왕이 살아계실 때 그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고, 모사는 기존에 그려진 어진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입니다. 추사는 왕이 돌아가신 뒤에 왕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는 것으로 아마도 가장 그리기 어려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이 어진은 왕이 돌아가신 뒤에 그렸진 것이지만, 순종의 경우에는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이렇게 사실적인 모습의 어진이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한편, 어진 속 순종의 얼굴은 불에 타고 그을렸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꽤 젊어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승하하시기 얼마 전의 모습이라면 50대로 접어든 중장년의 모습이었겠지만, 어진 속의 순종은 그보다는 젊어 보입니다. 비교적 젊은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 이유는 어진의 바탕이 된 사진이 바로 1909년, 순종의 나이 36세에 찍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의 순종은 군복을 입은 모습에 멋진 카이저 수염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사진 속 모습 그대로를 어진에 옮겨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옷은 군복이 아닌 곤룡포로 바뀌었고, 카이저 수염 이외에 턱수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어진은 궁궐 안에 모시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것이었으므로 전통적인 어진의 형식을 갖추어 그린 것입니다.
순종을 그린 어진은 1928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소개해드린 어진은 마지막 황제의 마지막 어진인 셈입니다. 불에 타고 그을린 모습이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마지막 황제의 얼굴에는 이러한 사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신재근(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립고궁박물관에는 왕의 초상화가 여러 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 절반가량이 불에 탄 채로 전해져온 왕의 초상화 한 점을 소개하겠습니다. 남아 있는 모양을 보면 오른쪽 면이 지그재그 형태를 그리고 있고 볼록한 지점 안쪽으로는 길쭉한 타원형의 구멍들을 만들며 불에 탄 모습입니다. 이렇게 위에서 아래까지 규칙적인 모양을 만들면서 불에 탔다는 것은 이 그림이 말려진 상태로 보관되던 중에 불에 탔음을 의미합니다.
왕의 초상화는 어진(御眞)이라고 부르며 본래는 궁궐의 선원전이라고 하는 공간에 소중히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어진 역시 창덕궁에 모셔져 있던 것이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으로 옮겨져 보관되었습니다.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보관 창고에 불이 나면서 궁궐로 돌아와야 할 상당수의 문화재들이 화마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어진도 그 때 불에 탄 것입니다.
어진은 보통 그림의 오른쪽 위에 ‘표제(標題)’라는 것을 적어서 어느 왕을 그린 것인지 기록을 하게 됩니다. 화마 속에서 다 타버리지 않고 절반 정도라도 남은 것은 다행이지만, 오른쪽 절반이 불에 타면서 표제는 남아있지 않고 이 어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옷입니다. 어진 속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은 황색 곤룡포입니다. 곤룡포는 왕이 평상 시 정무를 볼 때 입는 옷으로 조선시대의 왕들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황제국임을 선포하면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의 곤룡포를 입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는 고종과 순종 두 사람뿐이었으므로 이 어진의 주인공은 두 사람 중 한 명으로 좁혀집니다. 고종과 순종의 경우에는 당시 사진 기술이 도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어진 속 얼굴을 두 사람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주인공은 바로 마지막 황제인 순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진 제작과 관련된 기록들을 연구한 결과, 이 어진은 1928년에 그려진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순종은 1926년에 승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어진은 순종이 돌아가신 뒤에 그려졌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어진을 그리는 방법에는 도사(圖寫), 모사(摸寫), 추사(追寫)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도사는 왕이 살아계실 때 그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고, 모사는 기존에 그려진 어진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입니다. 추사는 왕이 돌아가신 뒤에 왕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는 것으로 아마도 가장 그리기 어려운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이 어진은 왕이 돌아가신 뒤에 그렸진 것이지만, 순종의 경우에는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이렇게 사실적인 모습의 어진이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한편, 어진 속 순종의 얼굴은 불에 타고 그을렸지만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꽤 젊어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승하하시기 얼마 전의 모습이라면 50대로 접어든 중장년의 모습이었겠지만, 어진 속의 순종은 그보다는 젊어 보입니다. 비교적 젊은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 이유는 어진의 바탕이 된 사진이 바로 1909년, 순종의 나이 36세에 찍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의 순종은 군복을 입은 모습에 멋진 카이저 수염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사진 속 모습 그대로를 어진에 옮겨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옷은 군복이 아닌 곤룡포로 바뀌었고, 카이저 수염 이외에 턱수염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어진은 궁궐 안에 모시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것이었으므로 전통적인 어진의 형식을 갖추어 그린 것입니다.
순종을 그린 어진은 1928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소개해드린 어진은 마지막 황제의 마지막 어진인 셈입니다. 불에 타고 그을린 모습이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마지막 황제의 얼굴에는 이러한 사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신재근(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