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유물 이야기] 왕자의 결혼 준비 들여다보기

otimetour
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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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기록물 중에는 발기[件記:ㅂㆍㄹ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록물은 주로 왕실 의례에 소용되는 물품, 인명 등을 일일이 나열하여 작성한 목록으로, 각 건(件)들에 대한 기록[記]이라 하여 한자로는 ‘件記’라고 했고 ‘件’은 우리 옛말로 ‘ㅂㆍㄹ’로 불러 ‘ㅂㆍㄹ기’라고도 하였습니다. 발기는 비록 낱장에 불과하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왕실 의례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왕자의 결혼 준비 들여다보기

국립고궁박물관에도 몇 몇 종의 발기가 있습니다. 그 중 지금 소개할 발기는 왕자의 결혼식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이 기록물은 가로로 긴 두툼한 종이를 아코디언 식으로 접어 직사각형 형태로 만든 첩으로, 표지는 겉면에 일부 남아 있는 붉은 색 직물로 보아 붉은 비단을 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발기를 펼치면 종이 위에 정성껏 붉은 선을 긋고, 정서로 한 줄 한 줄 쓴 글이 확인됩니다. 이를 편의상 가로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친영시 親迎時

먼저, 기록물 속에 보이는 ‘친영(親迎)’, ‘동뢰연(同牢宴)’, ‘조현례(朝見禮)’는 혼례 절차이며, ‘왕자(王子)’라는 명칭으로 보아 왕자의 가례 때 작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차비(差備)’는 특별한 일을 위해서 임시로 임명한 사람입니다. 즉, 가례에서 다양한 임무를 담당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차비들은 왕자차비, 부인차비와 같이 왕자, 부인 등 인물들의 잡일을 담당하기도 했고, 술잔을 준비한 근배차비, 대추와 밤이 담긴 소반을 준비하는 조율반차비와 같이 소소한 물품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각 차비아래에는 일(一), 이(二), 삼(三)과 같이 숫자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숫자에 따른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들은 화향(花香), 금향(錦香), 계월(桂月)과 같이 모두 성은 없이 이름만 두 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 볼 때, 이 기록물은 어떤 왕자의 가례 행사 시 다양한 일을 담당한 차비들의 명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물은 언제 작성된 것일까요?

조선시대에 왕세자, 왕자, 공주, 옹주 등 왕실의 주요한 인물이 혼인을 하면 그 준비와 진행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후일에 참고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왕세자는 등록과 의궤, 왕자는 등록을 남겼는데, 현존하는 등록들을 찬찬히 찾아보면 이 기록물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자 가례 등록들을 살펴본 결과, 이 기록물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화군(義和君)의 1893년 혼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의화군 혼례에 대한 기록인 『의화군가례등록(義和君嘉禮謄錄)』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가례청에서 문서를 내리길, 

“이번 가례 때 여러 의식을 사전 연습하기 위해서 예모관(禮貌官)과 능숙한 서원을 이번 달 21일을 시작으로 기기국(機器局)에 대령하며, 각 차비여령(女伶)은 안부(案付: 관청에서 제작한 문서)에 있는 숫자대로 선명하게 복색을 갖추고 각 관아의 담당 서리가 이번 달 21일 날 밝기 전에 여령을 거느려 기기국에 대령하라.”




廳甘結, 

今此嘉禮時, 各樣習儀次, 禮貌官與事知書員, 自今二十一日爲之始日, 待令于機器局爲?. 各差備女伶, 一依案付數, 以鮮明服色, 各其司掌吏, 今二十一日未明時, 豫率待令于機器局爲?. 





의화군가례등록 중 친영(親迎) 때 차비 여령 목록





* 『의화군가례등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K2-2705)을 활용하였습니다.



이상백(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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