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과 종묘 알아보기 [창덕궁] -4-

궁궐길라잡이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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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지”에서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고 있으나 근래에는 창덕궁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는 건물로 창덕궁의 동남쪽에 창경궁과 이웃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승정원 일기”와 낙선재 상량문에 헌종 13년(1847)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된 건물로서 국상을 당한 왕 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를 뒷 받침하는 예로 낙선재 바깥 뜰에 사각정이 있다. 4면에 亞자분합문 과 고창을 둔 것으로서 관을 발인할 때까지 두던 빈전이다. 일반의정자와는 그 용도가 크게 다른 건물이라 하겠다.
1926년에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윤비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이방자여사도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1989년에 타계한 뒤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1820년대 제작된 동궐도에서는 낙선재의 모습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서쪽에 낙선재가 있고 행각으로 둘러싸니 동쪽에 “석복헌”이 있고 다시 그 동쪽으로 “수강재”가 있는데 이 건물들을 통틀어 낙선재라 한다. 원래는 석복헌과 수강재 남행각 밖으로 중행각이 둘러 있고 다시 그 바깥쪽으로 외행각이 길게 늘어서 있었으나 중행각 외행각은 철거되었다.

순조 28년(1828)에 건립한 연경당보다 20년 뒤에 세워진 낙선재는 궁궐에 조영되는 주거 건축술로서 그 구성의 법식과 보존 상태가 훌륭하며 특히 연경당보다는 낙선재가 지형과 환경에 따라 자유분방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12칸의 낙선재 남행각에 있는 “장락문”이 정문이 되며, 장락문의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다.

취운정


수강재의 뒤뜰 화계 위에 자리잡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평면에 굴도리를 사용한 팔작지붕의 건물로서 서까래가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각재인 점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숙종 12년(1686)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동궐도에도 표현되어 있는 건물이다. 평면상으로 4면의 바깥기둥 사이에는 亞자 난간을 두르고 안쪽 기둥에만 문짝을 달아 4면의 툇칸이 개방되어 있어 좁은 대지를 여유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서쪽의 담장에 일각문이 있어 석복헌 뒤쪽의 한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한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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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에 각기둥과 굴도리를 사용한 건물이며, “동궐도형”과 “조선고적도보”의 배치도에서는 이 자리가 빈터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서는 1917년 이후에 옮겨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가운데에 2칸만 앞퇴를 두고 동쪽 칸은 누 마루로 구성하였고 전면을 제외한 3면에는 쪽마루를 두고 그 위로 亞자 난간을 둘렀다. 기단은 정면의 2칸 부분만 두벌대의 장대석으 로 두르고 앞마당에는 석분과 괴석의 운치를 더하였다. 툇마루의 서쪽벽에도 창문을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여닫도록 된 것과 변형된 亞자분합문이 한가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상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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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화계 뒤쪽의 후원인 높직한 터 위에 자리한 육각정의 누각건물이다. “궁궐지” 나 “동궐도형”에서는 육우정, 곧 “평원루”라 기록 하고 있다.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안쪽으로 다시 한 단을 돌려 쌓고 그 위에 육각형의 돌기둥으로 하층을 세운 뒤 그 위에 계자 난간의 툇마루를 구성하였고 난간의 궁판에는 투각하여 치장하고 난간 하부로도 낙양을 두어 장식하였다. 위층의 벽에는 육각형의 기둥사이로 사분합문의 창살 구성이 독특하고 공포는 일출목의 다포형식이며, 겹처마의 육각지붕 정상에는 절병통을 설치하였다. 내부의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었으나 중도리 안쪽 육각형의 부분은 마름모꼴의 소란반자로 구성하고 봉황과 용과 박쥐문양으로 화려한 단청을 베풀었다. 궁궐에 있는 소규모의 정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치장된 건물이다.

만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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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정의 서쪽 담장에 있는 문으로서 전돌로 만월형의 출입구를 내고 좌우로 밀어 열게 된 넌출문이 달렸다. 바깥쪽 문 좌우 담벽에는 수복등의 길상무늬와 꽃무늬로 가득하게 채웠다.
궁궐의 협문으로는 유일하게 원형으로 만든 아름다운 문이다.

승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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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정 서쪽에 있는 승화루를 “창경궁 궁궐지”에서는 창덕궁 후원 이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 하고, 아래층을 “의신각”이라 하였다. 연경당의 정문과 낙선재의 정문이 다 같이 장락문인 점과 주변의 누각을 주합루와 소주합루라 한 것에서 창덕궁의 주합루와 창경궁의 낙선재와 승화루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주합이란 시간과 공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합루의 아래층인 규장각은 서고로 사용되고 위층은 어진 어제 어필 보책들을 보관하기도 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선왕의 작품과 동서고금의 책들을 수장하여 시공이 합치되는 건물이라는 이름이 이해가 되나 소주합루가 같은 용도로
쓰였는지는확실하지 않다. 다만 아래층의 이름이 의신각으로 제도의 궁궐이라는 뜻이므로 각종 의궤와 법규책을 보관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따름이다.

순조대에도 “소주합루”라 불리던 건물이 승화루로 바뀐 시점 분명하지 않지만 헌종대에 낙선재를 건립한 뒤로 짐작된다. 건물의 아래층은 현재 전부 개방되어 있으나 동궐도에서는 여기에 방을 꾸민 것으로 표현되어 있고 현재의 돌기둥 아랫부분에 인방이 끼이는 홈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철거된 것으로 판단된다.

삼삼와/칠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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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이름이 독특하게 삼삼와로 부르는 연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부용정 남쪽에 있던 개유와는 중국서적을 수장하였던 건물이며 그 의미가 모든 것이 있는 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삼와는 여섯 모둠집이라는 뜻이며 승화루의 의신각과 함께 귀한 서적을 보관했 을 것으로 추측한다. 육각정인 삼삼와는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 하부로 2단의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초석과 고막이를 돌려 놓고 그 위의 아래층 벽에는 전돌로 귀갑문 장식을 하였다. 바깥쪽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르고 상중하의 삼단으로 구획된 살난간을 두르고 이 난간이 칠분서의 난간과 계단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육각형의 기둥을 사용한 초익공 겹처마로 지붕의 정상부에는 나지막한 절병통을 설치하고 있다. 현재는 위층의 창호가 세살분합문으로 되어있으나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에는 亞자살 분합문이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이것도 후대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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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분서는 육각정인 삼삼와에서 북쪽으로 연결된 한 칸 폭의 6칸 건물로서, 초익공 구조에 분합문을 설치하고 난간을 두른 복도각인데 건물 이름의 의미는 잘 알 수 없으며, 현재는 없는 건물인 중희당과 삼삼와를 연결하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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