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덕수궁터 미대사관 '신축허용' 로비

궁궐길라잡이
2004-01-16
조회수 3459
(한겨레 1.16) 서울시.외교부 ‘신축허용’ 로비 덕수궁터 미대사관 심의 문화재위원 만나 서울시와 외교부가 최근 ‘옛 덕수궁터 미국 대사관 신축 허용 여부’를 심의하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을 비공개리에 집단적으로 만나 ‘신축 허용’을 요청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문화재 관련 정책 결정의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문화재 위원들에게 정부와 지자체가 ‘협조’를 당부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이 자리에서 일부 문화재위원들은 참석한 서울시와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욱 교수(서울대 미학과) 등 문화재위 제도문화분과 위원들은, 지난 12일 분과 신년 하례회에 외교부와 서울시 관계자가 참석해 위원들을 상대로 ‘미국과 관계 악화’ 등을 거론하며 옛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위 제도문화분과는 전체 문화재위 위원장과 7개 분과 위원장이 모인 문화재위의 ‘핵심’ 분과로, 당시 모임엔 이종상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윤영관 장관의 사임 파문을 낳은 조현동 외교부 북미3과장, 제도문화분과 위원 16명 가운데 13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국장은 “애초 미국은 송현동 땅에 대사관을 지으려 했는데, 서울시의 부탁으로 덕수궁 터로 옮기게 된 것“이라며 “지금 와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국가간 신뢰를 어기는 것일 뿐 아니라 국익과도 배치된다”며 위원들을 설득했다. 또 조 과장은 “외교 관례상 외국 공관을 지을 땐 해당 국가에서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며 “앞으로 미국과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 문제 때문에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 안된다”고 위원들을 압박한 것으로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일부 위원들은 “자꾸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라”고 역정을 내거나, “당신들은 어느나라 사람들이냐”며 서울시와 외교부의 대미 저자세 외교를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문화분과 위원인 현고 스님(조계종 기획실장·문화재위 위원)은 “외교부가 국민들의 감정은 아랑곳 않고 계속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면 안된다고 강조해 무척 불쾌했다”며 “외교부 공무원들의 지나친 사대의식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서울시와 외교부 관계자들이 예고없이 나타나 황당했다”며 “서울시나 정부가 나서지 말고 문화재위가 법 절차에 따라 결정을 내리도록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외교부와 서울시가 미국의 요구에 떠밀려 문화재위를 상대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다른 분과를 상대로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면 강력한 저지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