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경희궁을 '점령'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마땅한 훈련 공간 없어 시민 민원 감수하고 '메뚜기식' 훈련 2004/02/21 오후 5:31 정민규(hello21) 기자 ⓒ 2004 OhmyNews -사진생략- ▲ 종로경찰서 소속 의경들이 경희궁 숭정문 앞에서 방패와 곤봉을 이용한 진압 훈련을 받고 있다 ⓒ2004 정민규 한 차례 비가 스치고 지나간 21일 종로구 경희궁 공원. "하나! 둘! 셋! 넷"하는 우렁찬 함성이 한적한 공원에 울렸다. 경희궁 숭정문 앞 공터에서 종로경찰서 소속 의경 50여명이 훈련을 받고 있는 소리다. 관련기사 경찰기동대, 국가사적지 경희궁 앞 '무단 점령' 곤봉과 방패를 갖춘 의경들은 번갈아 가며 시위대가 되고 진압 경찰이 되어 시위대를 진압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방패로 시위대를 짖누르고 곤봉으로 내려치는 모습이 시위 현장에서 익히 봐왔던 모습이다. 방패와 곤봉이 부딪히며 나는 둔탁한 소리에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다 눈살을 찌푸리는 시민들은 경찰이 훈련을 받는 입구 쪽을 돌아서 잔디밭을 넘어 경희궁으로 들어선다. 경희궁은 광해군 8년(1616년)에 처음 세워져 일제 시대에 일부가 헐리고 이 터에 학교가 들어서는 등 몇 차례 시련을 겪은 뒤 88년부터 복원작업 거친 국가 사적 271호다. 경희궁을 관람하고 있던 김 모(41.남양주)씨는 "아이들을 역사박물관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기다리며 경희궁 공원을 둘러보고 있다"면서,"공원에서 저렇게 의경들이 곤봉을 들고 휘두르는걸 보고 있으니 한심스럽다"고 볼멘소리로 말한다. 이미 <오마이뉴스>를 통해 경희궁 앞에서 경찰기동대가 훈련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지적한 사례가 있다고 말하자 김 씨는 "옆에 역사박물관이 있어 애들도 많고 가족 단위 관람객들도 많으며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인데, 안 한다면 안 해야지! 지휘 계통이 엉망인가 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안내책자들 펴며 "이걸 봐라. 예전에는 100채가 넘었던 건물이 있었고, 왕이 집정을 했던 곳인데 넓히지는 못할망정 훈련을 하고 있으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조용히 공원을 관람하려고 왔는데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며 "(올림픽 대표팀 한ㆍ일전)축구나 보러가야겠다"며 공원에서 사라졌다. 이에 대해 공원관리사무소 측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리소 직원은 "구청에서 협조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무실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것이니 우리는 따르는 것 뿐"이라며 "28일까지 훈련을 하겠다고 신청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계속적으로 훈련을 하지는 않지만 오전 중으로 잠깐 훈련을 하다가는 것 같다"며 "뒤편에 주택가가 밀집해 있고 도심에서 하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관내 경찰서에서 하는 것이니 못하게 할 수도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경희궁 공원 뿐 아니라 종로구 내에 공원의 종합적 관리를 맡고 있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박민상씨는 "시설 훼손이 없다는 전제 하에 허가를 내주고 있다"며 "경찰 뿐 아니라 방송이나 학교에서 협조가 와도 대부분 허가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 받을 공간 없어 여기 저기 '메뚜기 훈련' 훈련을 진행하고 있던 종로경찰서 김철홍 경감은 "종로관내의 경우 마땅한 훈련 장소가 없다"고 토로한다. 김 경감은 "벽제수련장과 1기동단 훈련장 등을 이용하지만 오고 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서울 시내 100여 개 중대가 사용하기에는 좁다"고 말한다. 김 경감은 "훈련 공간이 마땅치 않아 중랑천과 한강고수부지, 학교 운동장 등도 이용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 이곳을 날씨 궂은 날 등을 골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훈련을 해야지 대원들이 현장에서 다치지 않는데 훈련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없어 난처하다"고 말한다. 김 경감은 "지난번 <오마이뉴스>에 보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점검기간이고 훈련을 받을 공간이 워낙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훈련을 할 수 밖 에 없다"고 말한다. 이어 김 경감은 "우리라고 번듯한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싶지 않겠느냐"며 "시민과 언론이 경찰 훈련 공간이 없다는 사실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계 김인 경사도 "기본적인 공간도 없고, 고정적으로 만들어진 곳도 없다"며 "전의경들이 훈련을 받을 마땅한 공간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시설 확충 계획을 묻자 김 경사는 "계획안은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추진 중에만 있다"고 말했다. 김 경사는 "서울 시내에 넓은 공간도 없을뿐더러 예산 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